대통령실 "구금 한국인 근로자 석방교섭 마무리"했다지만 3500억달러 투자… 민감한 시점서 '리스크' 짊어져 WSJ "해외 기업에 새로운 위험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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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이민당국이 공개한 현대차-LG엔솔 이민단속 사진 ⓒICE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체포·구금되면서 현지에 투자 중인 한국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7일 오후 "구금 한국인 근로자 석방교섭 마무리됐다"고 밝혀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이번 사태로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의 불안감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더욱이 한미 양국이 지난달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세율 인하와 3500억달러 규모 투자를 맞바꾸는 투자 세부 논의를 진행하는 민감한 시점에 '투자 리스크'가 현실화 되면서 미국 투자를 늘리려는 한국 기업들의 속도조절은 불가피해졌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 美 공장 지어야 하는데
7일 LG엔솔은 사태 직후 미국 출장을 사실상 전면 중단했다. 고객사 미팅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출장을 취소했으며 현지 체류 직원들에게는 귀국 또는 숙소 대기를 지시했다.김기수 최고인사책임자(CHO)는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구금된 직원들의 조속한 석방이 최우선"이라며 "신속하고 안전한 복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현대차도 대응에 적극 나섰다. 현대차는 이번 단속이 하도급 고용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판단하고 전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고용·비자 검증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현대차 관계자는 "공사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당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면서 "협력사 전반의 컴플라이언스 점검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내부적으로는 추가 단속에 대비해 미국 내 법률 자문단과 비상대응팀을 가동한 것으로 전해졌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긴장하고 있다. 양사는 미국 텍사스와 인디애나에 수십조 원 규모 반도체 공장을 각각 짓거나 지을 계획이다.업계에 따르면 미국 내 전문 인력 수급이 쉽지 않아, 공사 초기나 막바지에는 B1 비자나 ESTA 등 단기 비자를 활용해 공정을 빠르게 끌어올려 왔다. 그러나 비즈니스·계약 목적의 'B1' 비자와 단기 체류용 무비자인 'ESTA' 모두 미국에서 급여를 받는 육체노동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
- ▲ 미국 이민당국이 공개한 현대차-LG엔솔 이민단속 사진 ⓒICE
◆ 쇠사슬·케이블타이로 근로자 손발 결박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총 475명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300명 이상이 한국 국적 근로자로 확인됐다.LG엔솔 본사 소속 직원 47명을 포함해 하도급 협력사 직원이 다수를 차지했다. HSI는 이번 조치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현장 단속"이라고 설명했다.미 이민당국이 공개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단속 요원들이 케이블타이와 쇠사슬로 근로자들의 손발을 결박해 이송했다. 미 이민당국은 이민세관단속국(ICE) 홈페이지에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각각 공개했다.CNN은 해당 단속이 '군사작전'처럼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경찰이 공장으로 통하는 도로를 폐쇄한 뒤 약 500명의 단속 요원이 급습해 현장에 있던 근로자를 한 명씩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하는지' 확인했다.사태 발행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돼서는 안 된다"면서 "대사관과 총영사관 중심으로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한 상태다.이에 조현 외교부 장관은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필요 시 직접 미국을 방문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를 꾸리고 애틀란타 총영사관을 중심으로 현지 변호사와 의료진을 투입했다.
◆ WSJ "해외 기업에 새로운 위험 드러나"
외신들도 이번 사태를 단순한 고용법 집행이 아닌 한미 간 무역 협상과 투자 압박이 얽힌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단속은 관세와 투자를 둘러싼 한미 간 수개월간의 협상 끝에 이루어졌다"며 "미국과 한국의 양자 관계가 민감한 시기로 미국 관세율 인하와 맞바꾸는 3500억 달러 규모의 한국 투자가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미국 투자를 확대해온 해외 기업에 새로운 위험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급습은 7월 체결된 무역 협정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기업들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를 약속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며 "서울과 워싱턴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단속은 미국 내 제조업 확대를 위한 한국 기업들의 전략이 정치·외교적 변수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업계와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서고 있으나 빠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누가 나서서 미국에 투자하려고 하겠느냐"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