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선호 키워드='적임자', '위기돌파', '리스크 회피'
-
현대가(家)가 공급과잉과 글로벌 시황 악화 속에서 올드보이(OB)들을 구원투수로 지목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일 조건식 전 현대아산 사장이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4년 만에 현대아산 신임 대표로 돌아왔다. 권문식 현대자동차그룹 사장도 올해 2월 3개월 만에 깜짝 복귀했다. 앞서 한규환 현대로템 부회장은 4년 여를 야인으로 묻혀있다 2012년 수장으로 재신임 받았다.
'제왕적 리더십 잔재' '세대교체 역행' 등 비판적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들 OB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계관계자들은 '적임자', '위기돌파', '리스크 회피'를 OB선호의 키워드로 꼽았다.
공급과잉과 과당경쟁 심화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 약화는 기업들이 보수적 관점에서 위험을 끌어안으려 하기보다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CEO 선임도 이미 검증된 인물을 중용하려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과거 정비와 성과가 뛰어났던 인물이 검증되지 않은 새 사람보다 안전하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OB 재등용의 대표주자는 현대자동차다.
권문식 현대자동차그룹 사장은 사표를 낸 후 3개월 만에 경영일선으로 복귀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단시간의 복직에 이 부문 신기록이라는 우스개소리도 나왔다. 사표 제출 당시 권 사장은 국내와 해외 200만대 리콜, 일부 차량 누수 문제 등 품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권 사장이 사표를 제출한 이후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미국과 유럽 시장점유율은 각각 8.1%, 6.2%로 2012년(미국 8.7%, 유럽 6.3%)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미국 소비자 조사업체인 컨슈머리포트의 브랜드 인지도 평가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정몽구 회장은 권 사장의 공백이 연구개발 부문의 총체적 균열로 이어지자 서둘러 권 사장의 복귀를 타진했다. 이 같은 정 회장의 판단은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 연구개발 부문의 공백이 성장동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적임자'를 통한 '위가돌파'의 의지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윤여철 현대자동차그룹 노무총괄 부회장도 정 회장의 '리스크회피'와 '적임자' 찾기를 통해 재신임을 받았다. 2012년 초 울산공장 노조원 분신 사망사건으로 퇴임한 윤 부회장은 지난해 4월 노무담당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주간 2교대제 도입과 비정규직 시위 등으로 살얼음 같은 노사 관계 속에서 고심하던 정 회장은 결국 1여년 만에 윤 부회장을 다시 선택했다.
최근 복귀한 조건식 현대아산 대표는 현대그룹의 정통성의 한 축인 대북사업의 적임자라는 판단아래 이뤄졌다. 조 대표는 2008년 8월 윤만준 전 현대아산 사장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면서 현대아산 구원 투수로 투입됐으나 경색된 남북관계로 그 어떤 역할조차 맡지 못한 채 2010년 3월 쓸쓸히 퇴장했다.
그러나 현대아산측은 경색된 남북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상황에서 통일부 차관을 지낸 조 대표가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에 일조할 최고의 북한 전문가라는 주장이다.
한규환 현대로템 부회장은 2008년 그룹 세대교체 물결을 이기지 못하고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가 2012년 현대로템 수장으로 복귀했다. 앞서 김원갑 현대하이스코 부회장도 2011년 4월 상근고문으로 물러났다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다. 이들 사례 역시 위기감 속 '적임자' 공식이 적용됐다.
이 같은 현대의 'OB 다시보기'에 현대자동차그룹측은 정 회장이 재직과 퇴직을 가리지 않고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인사 원칙'을 갖고 있다며 "임원에서 물러난 고문들도 제2의 인력풀"이라고 밝혔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