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 처방 강제' 입법에 의료계 전문성 무력화 반발대체조제 절차 간소화, 법사위 통과로 갈등 불씨 확산비대면진료·전자처방전까지 맞물리며 제도 근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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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의 전문성과 환자의 접근성을 둘러싼 처방권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국회가 성분명 처방 강제 법안을 발의하고 대체조제 사후 통보 간소화 법안을 법사위까지 통과시키면서 의료계와 약계의 갈등은 한층 격화됐다. 여기에 비대면진료와 공적 전자처방전 논의까지 맞물리며 의약분업 25년 질서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성분명 처방 강제, 직역 갈등의 불씨

    이달 초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은 정부가 지정하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처방할 때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벌 조항까지 담겼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성분명 처방 강제는 의학적 판단을 무력화하고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형사처벌까지 규정된 부분을 두고 “정부가 공급 불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의료현장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약계는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대한약사회는 “환자가 동일 성분의 다른 약으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보완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설명했다. 일부 환자단체도 “갈등의 본질은 직역 권한 다툼이 아니라 환자가 제때 필요한 약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라며 법안 논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 대체조제 간소화, 효율성과 안전성의 충돌

    대체조제를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지난 8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9월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한 약사법 개정안은 약사가 동일 성분 대체조제를 할 경우, 의사에게 심평원 전산 시스템으로 통보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존 팩스·전화 방식에 비해 간소화된 절차다.

    정부는 보고 체계의 효율화와 행정 부담 완화를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가 환자에게 실제 조제된 약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이상반응 발생 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며 환자 안전 저해를 우려한다. 

    약계는 “의사가 대체조제를 거부해 환자가 약을 제때 받지 못하는 불편이 반복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결국 이 논란은 '효율성 강화'와 '안전성 보장'이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양상이다. 

    ◆ 비대면진료와 전자처방전, 새로운 불씨

    직역 갈등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산업·기술 갈등이 부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누적 1260만 건이 시행되며 안전성과 편의성이 입증된 비대면진료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시 제한될 위기에 놓였다. 일부 법안은 이용 대상을 기존 대면 경험 환자나 도서·벽지 거주자로 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검증된 성과를 무시한 후퇴”라고 반발한다. 의료계는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며 신중론을 유지한다. 산업계와 의료계가 서로 다른 이유로 법안 추진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 논의도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와 국회는 처방전 발급 과정을 국가 시스템에서 관리하는 제도를 추진 중이다. 정부는 투명성과 효율성을 내세우지만 의료계는 강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대한내과의사회는 "공적 전자처방전은 의료현장 현실을 외면하고 진료 본질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 보안 책임 불명확, 시스템 오류에 따른 행정부담 증가는 대표적 우려다. 

    나아가 "처방권이 점차 행정화되고 진료·조제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플랫폼 업계 등 산업계도 규제 불확실성으로 투자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한다.

    ◆ 압박받는 처방권, 제도의 신뢰 시험대에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는 의약분업의 전통적 균형을 흔드는 문제이고, 비대면진료와 전자처방전은 디지털 전환 속에서 불거진 새로운 갈등이다. 결은 다르지만 네 가지 사안 모두 결국 ‘의사의 처방권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떤 책임을 부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의료계는 "전문성을 훼손하는 제도 개편은 환자 안전에도 해가 된다"고 경고한다. 약계와 정부는 "환자 접근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개혁"이라고 맞선다. 

    산업계는 "투자와 기술 발전이 규제 불확실성에 막힌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환자단체는 "권한 다툼의 피해자는 결국 환자"라고 지적한다.

    국회의 선택은 단순한 직역 갈등을 넘어 국민 건강권과 의료체계 신뢰, 그리고 산업 경쟁력까지 좌우하게 될 전망이다. 25년 전 의약분업의 합의 정신은 지금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