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1724원·경유 1713원 가격상한제에 기름값 주춤두바이유 연일 급등 … 과거 사례 볼 때 2000원 상회해야정유업계 손실·정부 손실보전 규모 늘어날 수 밖에 없어수출까지 통제하는 정부 눈밖 날라 … 공급량 조절 총력
  • ▲ 주유소를 찾은 이용자들이 주유하는 모습.ⓒ연합뉴스
    ▲ 주유소를 찾은 이용자들이 주유하는 모습.ⓒ연합뉴스
    치솟는 기름값을 잡겠다며 정부가 빼든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 첫날부터 스텝이 꼬였다. 제도를 강행하자마자 국제유가가 폭등하며 기준점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유류세 인하 대신 세금을 투입해 정유사의 손실을 보전해 주겠다는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이 결국 세금 낭비와 산업 타격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빗나간 정부의 재정 셈법

    13일 0시를 기해 휘발유 (1724원)와 경유(1713원) 등 주요 석유제품의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을 두는 최고가격제가 본격 시행됐다.

    이 기준은 하루 만에 시장 가격과 동 떨어진 수치가 됐다. 이란의 항전 의지 고조 등 중동발 리스크로 국제유가가 재폭등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유업계가 주로 들여오는 두바이유는 12일 배럴당 123.06달러로 전날보다 9.51달러 치솟았다. 브렌트유는 8.48달러 상승한 100.46달러로 마감하며 100달러 선을 다시 돌파했다.

    정부가 제시한 휘발유 1724원이란 가격은 지난 11일 정유사가 제출한 평균 공급가격(1833원)에서 109원 저렴한 금액이다. 벚꽃 추경을 추진 중인 정부 입장에선 장기 세수 감소가 불가피한 유류세 인하보다 리터당 100원 안팎의 손실을 보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물류 및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경유의 경우 정유사 평균 공급가격(1931원)보다 218원 낮게 책정됐다.

    하지만 두바이유가 단숨에 120달러를 돌파하면서 정부가 정유사에 메꿔줘야 할 보전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다. 단기 대책이라지만 고유가가 며칠만 지속돼도 재정 부담은 수직 상승한다. 정유업계 안팎에선 "정부 말만 믿고 무작정 공급했다가는 사후정산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공급보다는 최대한 손실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기 위해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 ▲ 서울 시내 주유소 유가 정보.ⓒ뉴시스
    ▲ 서울 시내 주유소 유가 정보.ⓒ뉴시스
    수출 통제까지 나선 정부 … 퇴로 막힌 정유사 실적 쇼크 직면

    가격 통제에 묶인 정유업계는 분기당 영업손실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통상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 기준 배럴당 4~5달러 선을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현재의 국제유가라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2000원대 중반 이상으로 치솟아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하지만 이날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1883.79원으로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비싸게 기름을 들여와 원가 이하로 팔게 되면 정부의 사후정산이 있더라도 영업이익 타격은 불가피하다.

    이 가운데 수익성을 방어할 퇴로마저 막혔다. 정부가 최고가격제와 함께 '전년 판매분의 100%까지만 수출이 가능하다'는 수출 물량 제한을 동시에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대형 정유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고 고정 거래선이 있어 마진에 따라 내수와 수출 비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구조"라며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는 내수 물량 축소를 우려한 조치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부 방침에 맞춰 국내 시장 안정화가 최우선이므로 수출 물량을 늘리고 내수 공급을 줄이는 방안은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정책의 구조적 모순 … 손실 입증 떠넘기기

    큰 문제는 정책의 구조적 모순이다. 기름값을 내리기 위해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거나 소비자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류세나 소비세를 인하하는 것이 아닌 가장 극단적인 최고가격제를 섣불리 꺼내 들었다는 점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 등 단기간에 쓸 수 있는 다른 정책 수단이 많은데 최후의 수단인 최고가격제를 너무 일찍 과하게 시작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기업이 손실을 보고 이를 세금으로 메꿔주게 되면 결국 국민 세금이 다시 투입되는 구조라 이 방식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결국 차량 미소유자의 세금까지 주유소 기름값을 보전하는 데 투입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손실을 입증해야 하는 방식 역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회계법인 등을 통해 손실을 검증해 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유 산업 특성상 일률적인 원가 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대형 정유사 관계자는 "원유를 들여와 1차 정제를 거친 뒤 남은 찌꺼기를 고도화 설비에 넣어 재처리하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데, 휘발유 하나만 떼어내 단정적으로 손실 여부를 계산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원유 시장과 석유 제품 거래 시장은 참여자도 다르고 시장 자체가 다르다"며 "유가가 오른다고 제품 가격이 무조건 오르거나 정유사가 손해를 본다고 단순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