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위, 의사 부족 단일 수치 대신 '최소~최대' 제시 가닥'9000명~3만6000명' 널뛰는 추계에 신뢰 논쟁 지속 … 의료계 반발 여전숫자 정하면 '전면전' 미루면 '행정 부담' … 정책 선택지 좁아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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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학년도 의대 정원 결정을 앞두고 의사인력 수급 논의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의사 부족 규모를 특정 숫자로 고정하지 않고 최소~최대 범위(range) 형태로 제시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어서다. 의대증원이라는 정책 결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치를 우회하는 방식 역시 의정 갈등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추계위는 수요·공급 추계 결과를 단일 수치가 아닌 범위로 정리하는 내부 원칙을 공유했다. 의사 부족 규모를 구체적 숫자로 제시할 경우, 해당 수치가 정책적 결론처럼 소비되며 의대 정원 논쟁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그간 추계위가 2040년 의사 부족 규모를 이미 결론 내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 실제 내부 논의는 결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추계위는 수요를 최소수요~최대수요, 공급을 최소공급~최대공급으로 나눈 뒤 이를 교차해 나타나는 전체 범위를 정책 판단 자료로 제시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추계위 내부에서는 '2035년 의사 1만5000명 부족'이라는 단일 수치가 곧바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논쟁으로 직결됐던 윤석열 정부 시절의 사례를 고려해 대안을 마련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추계위 관계자는 "특정 숫자를 결론처럼 제시하는 것은 위원회의 역할과 맞지 않는다"며 "의사 부족 규모는 가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 범위로 제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숫자를 고정하는 순간 추계위가 정책 결정 주체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널뛰는 추계 결과…신뢰 논쟁은 여전실제 추계 결과의 변동 폭은 논란의 핵심이다. 추계위는 앞선 회의에서 현행 의대 정원(연 3058명)을 유지할 경우 2040년 의사가 1만4000명대에서 1만8000명대까지 부족할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시계열 분석 모형(ARIMA)을 적용한 계산이다.그러나 이후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변화, 근무일수 조정 등을 변수로 추가 적용하자 의사 부족 규모는 약 9000명대에서 최대 3만6000명대까지 설정됐다. 같은 연도를 놓고도 가정에 따라 결과가 4배 가까이 벌어지면서 어느 수치를 정책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를 둘러싼 신뢰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추계위 내부에서도 시각은 엇갈린다. 일부 위원들은 "모형과 가정이 달라도 의사 수급이 부족해지는 방향성 자체는 일관된다"고 보는 반면 다른 위원들은 "수치 변동 폭이 커 단일 숫자를 정책 근거로 삼기 어렵다"며 범위 제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의료계 반발…"머릿수 아닌 투입 시간"의료계의 문제 제기는 추계 방식 전반을 향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수를 단순 인원으로 계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환자 진료에 투입되는 시간을 반영한 전일제 환산 지수(FTE)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근무 형태와 진료 강도가 다양해진 현실에서 '머릿수 세기'는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하지만 FTE 산출에 필요한 기초 자료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쟁점으로 남아 있다. 추계위 위원으로 활동 중인 문석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회의 때마다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 제공이 이뤄지지 않아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의료계는 이를 두고 추계 과정의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다.◆ 범위로 가도, 숫자로 가도…갈등은 불가피정책 일정상 정부 역시 선택지가 넓지 않다. 의대 정원은 대학별 정원 배분과 입시 요강 확정, 수시·정시 일정과 직결돼 있어 결정을 장기간 미루기 어렵다. 그러나 추계 결과를 단일 숫자로 제시할 경우 의료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고 범위로 제시하더라도 결국 의대 증원 규모를 정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이 때문에 추계위의 향후 회의는 '결론의 내용'보다 '결론을 어떤 형식으로 제시할 것인가'가 핵심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단일 숫자를 내놓지 않겠다는 원칙이 확인되더라도 그 범위를 정책 결정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의정 간 긴장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전문가들은 "의대 증원 논의가 숫자 경쟁으로 흐르기보다 가정과 변수에 대한 설명과 검증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관리급여, 검체검사 위수탁 강행 등 의료계와 정부 간 신뢰가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어떤 방향을 택하더라도 내년 의정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