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윤활유 섞은 값 싼 감압정제유 내륙발전소 사용 급증신재생에너지 비율 높이랬더니... "도덕성 도마위"
  • ▲ 2014년도 하반기 발전소 기동연료유 입찰 현황 ⓒ자료참고=한국전력
    ▲ 2014년도 하반기 발전소 기동연료유 입찰 현황 ⓒ자료참고=한국전력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5개 내륙발전소가 하반기 기동연료유 입찰을 진행중인 가운데, 투자비 등이 많이 투입되는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폐기물에너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공기업이 나서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50만KW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모든 발전사업자의 경우 총 발전량의 일정량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태양광, 지열, 풍력 등 비용이 많이 드는 것보다 손쉽게 의무를 달성할 수 있는 정제유를 선택함으로써 비용도 줄이는 등 '일거양득'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폐윤활유를 재활용한 정제유의 경우 LG화학, 코오롱 등 석유화학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생연료유2호(중유형)를 다량 섞은 것으로 환경적으로나, 발전설비 보호차원에서 정유사에서 생산하는 등유나 부생연료유1호(등유형) 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게 분명한 만큼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8일 한전 발전 자화사 5개사는 오는 12월까지 6개월 간 발전소의 기동연료유로 쓰일 등유, 부생연료유 1호, 부생연료유 2호, 감압정제유 등 총 3만8000㎘(킬로리터) 규모의 제품을 공급할 업체를 선정한다.

    기동연료유 입찰은 각 자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며 최저가 입찰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입찰 가격은 싱가포르 현물 가격(MOPS)±α를 기준으로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공급권을 따내는 '알뜰주유소' 입찰과 동일한 방식이다.


    단, 각 발전소 별로 등유, 부생연료유 1호, 부생연료유 2호, 감압정제유 등 참가유종에 제한을 뒀다.

    4종을 모두 포함시킨 곳은 한국남동발전의 영동화력이 유일하며 등유와 부생연료유 1호만을 참가유종으로 제한한 곳은 한국남부발전과 한국동서발전(당진화력, 호남화력)이다. 나머지 발전소는 등유와 부생연료유 1호, 감압정제유를 참가유종으로 제한했다.

    이미 입찰을 완료한 한국중부발전은 감압정제유를, 한국남부발전(한림복합)은 부생연료유 1호를 각각 하반기 기동연료유로 선택했다.

    8일부터 11일까지 서부발전, 동서발전, 남동발전의 기동연료유 입찰이 예정된 가운데 가격경쟁력이 높은 감압정제유가 기동연료유 시장을 독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 한전 발전소 기동연료유 유종 비중 ⓒ자료참고=한국전력
    ▲ 한전 발전소 기동연료유 유종 비중 ⓒ자료참고=한국전력

     

    지난 2012년부터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에 공급되기 시작한 감압정제유는 도입 첫 해 점유율 6%에서 2013년 38%, 올해 상반기 71%로 급성장하며 기동연료유 시장을 잠식했다. 올해 하반기 또한 감압정제유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발전소가 기동연료유로 감압정제유를 선택하는 이유는 크게 가지다. 기존 기동연료유 제품 대비 ℓ당 90원 가량 저렴한 가격 경쟁력과 지난해부터 감압정제유가 '신재생에너지'로 분류돼 RPS(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RPS는 신재생에너지설비를 제외한 설비규모 50만KW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모든 발전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량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공급토록 의무화한 제도로 불이행시 과징금이 부과된다.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의무 비율은 지난 2012년 2.0% 이상에서 매년 0.5%씩 늘려 올해는 3.0%, 오는 2024년에는 10% 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문제는 감압정제유가 폐유를 정제해 만든 폐기물 에너지라는 점이다.
    현재 RPS가 인정하는 신재생에너지에는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연료와 함께 폐기물에너지까지 포함 돼 있다.

  • ▲ IEA의 재생에너지 및 비재생폐기물에너지 분류 ⓒ산업통상자원부
    ▲ IEA의 재생에너지 및 비재생폐기물에너지 분류 ⓒ산업통상자원부

     

    국제에너지기구(IEA) 가입국 중 폐기물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분류하고 있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게기다 한국은 RPS 이행시 각 에너지별 할당 비율이 정해져 있지 않다. 즉, 어떤 종류의 신재생에너지로든 RPS 의무비율만 충족시키면 된다.

    태양광 에너지와 폐기물 에너지가 똑같은 신재생에너지로 취급되기 때문에 한전
    발전 자회사들은 투자 비용이나 도입 비용이 많이 드는 신재생에너지보다는 값 싸고 도입이 손쉬운 폐기물에너지를 선택하고 있다.

    실제 RPS 미이행으로 인한 발전소의 과징금 규모는 매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2년도 RPS 미이행 과중금은 총 254억원을 넘어섰으며 2013년도에는 그 2배가 훌쩍 넘는 63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는 
    폐기물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분류하고 RPS 에너지별 할당 비율을 정하지 않은 환경부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 폐기물 에너지 사용량을 늘리고 있는 한전 발전 자회사들의 도덕성 또한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RPS가 폐기물 에너지 유통만 활성화시키고 있는 꼴"이라면서 "더군다나 공기업인 한전 발전 자회사들이 장기적으로 폐기물 에너지를 쓰다가 운전상 문제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석유및대체연료사업법(이하 석대법) 상 실소비자인 발전소 외에 유통이 금지 돼 있는 중유형 부생연료유(부생연료유 2호)를 섞은 감압정제유가 아무런 제재없이 발전소에 버젓이 공급되고 있다.

    석대법 43조 7항에 따르면 등유나 중유에 대체하여 연료유로 사용하는 실소비자 외의 자에게 공급하는 행위는 '유통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
    단, 폐기물관리법 제 25조에 따른 폐기물처리업자가 폐유를 재활용한 정제연료유의 품질 개선을 목적으로 등유에 대체하는 부생연료유(부생연료유1호)를 사용하는 경우 그 폐기물처리업자에게 공급하는 행위는 제외된다. 쉽게 말해 부생연료유 1호만 폐기물처리업자에게 유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감압정제유 업계는 "부생연료유 2호를 실소비자 외에 공급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부생연료유 2호를 감압정제유에 섞어서 유통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며 "환경부에서 정한 정제유 품질 기준만 맞추면 정제유에 어떤 제품을 섞든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석대법 상 발전소 외에 유통이 금지된 부생연료유 2호를 섞어 공기업인 한전의 5대 발전소에 공급하면서도, 감압정제유는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제유 업계에서는 부생연료유 2호 유통에 대한 금지 사항만 있을뿐, 법 조항 어디에도 '부생연료유 2호를 섞어서는 안된다', '부생연료유 2호 혼유 금지'라는 조항이 없는 만큼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앞 뒤 논리가 맞지 않는 명백한 입법 미비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감압정제유 사용과 관련한 논란은 10여전부터 꾸준히 제기 돼 왔으나 감압정제유는 폐기물 에너지 관리법의 제재만 받을 뿐 석대법에서는 제외 돼 있어 사각지대에 숨어있다"면서 "그러나 석대법상 명백히 유통이 금지된 제품을 섞은 정제유가 공기업인 한전의 발전소에 공급되고 있다면 한전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만약 석대법 상 발전소 외 유통이 금지된 제품을 섞은 감압정제유가 한전 발전소에 공급되고 있다면 이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면서 "한전 발전 자회사 측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해당 제품을 공급받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에너지업계는 환경부가 폐기물 처리에만 급급한 나머지 사후문제에 대한 고민은 다소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석유관리법이 석유및대체에너지법으로 바뀐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이라며 "만약 물로 가는 자동차가 나올 경우 연료로 사용된 물에도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폐윤활유를 처리하는 과정의 경우 폐기물 관리법의 적용이 맞지만, 폐기물 에너지가 석유 대체 연료로 사용되고 유통될 경우에는 석대법을 따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